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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그리고느낌.

일본사회비평 - 창조적 사고와 규칙


얼마 전 한국과 일본 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일본에 살면서 좋은 점은 한국과의 축구경기를 모두 TV 중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 대표팀의 축구 경기를 즐겨 보는 편이지만 한일전을 더욱 좋아하는데 아마 라이벌 전으로서 양국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더욱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날 경기는 그 꽤 재미있는 양상을 보였다. 게임이 3대 1로 역전된 것도, 총 4골중 첫 2골이 PK인 것도, 양국 선수가 번갈아 퇴장 당한 것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양 팀의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한국 팀은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인 가운데 한두 번의 찬스를 잘 살려서 득점에 성공한 반면, 일본팀은 많은 득점을 하지는 못하였으나 멋진 패스워크로 많은 찬스를 만들었다.

일본은 시스템 중심의 사회이다. 다양한 분석을 통해 성공을 위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 성실히 일해서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한다. 축구에서는 패스의 완성도를 높여 볼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그런 규칙이 될 것이고, 학교에서는 정해진 학습 프로세스가 될 것이다. 이 규칙들은 사회의 곳곳에 자리잡아, 일본이라는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쓰레기를 거의 보기 힘든 일본의 길거리도, 교통질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과 잘 융화를 이루며 친절한 것도 이 ‘규칙’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좋은 (Good) 결과를 내고 있는 규칙들이 최고(The Best)의 결과를 내는 것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규칙을 충실히 따르도록 할 때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할 수는 있지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대부분 묻히고 말기 때문이다. 창조성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이며 규칙은 보통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일본에서는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별히 ‘상호평화의 원칙’ 은 이와 같은 창조성의 제약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매우 평화적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중요한 규칙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주변 사람들과 화합을 이루어 상호간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각자의 직업, 위치 등에 의해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이 정해지며, 그 역할에서 벗어나면 어떤 방식으로든 제제가 가해진다. 어떤 한 말단 사원이 자기가 속한 부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해 보자.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순간 모두가 어렵사리 구축해 놓은 ‘평화’는 깨질 위험에 처한다. 그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기존의 방법도 썩 나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규칙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은 많은 규칙들에 의해 잘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사회이다. 하지만 규칙을 우선시하고 기존의 규칙을 개선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현재의 방식으로 급변하는 새로운 시대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축구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날 일본 선수들은 화려한 개인기와 잘 훈련된 패스워크를 보여주었다. 높은 수준의 개인기와 패스워크로 볼을 오랫동안 소유하고 있을 때 골을 많이 넣고 이길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승부는 그것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른 약간의 변칙, 그리고 그 변칙에 운이 따라준다면 또 골을 넣을 수 있는 것이 축구다. 하지만 일본의 감독과 선수들은 그 변칙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은 규칙 위반이며, 그로 인해 벌어질 일에 대해서 책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변칙을 남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경제적, 문화적으로 이미 세계 정상의 대열에 서 있는 일본이라면, 이제는 지금까지 일본을 이끌어온 이 ‘규칙’들에 조금은 여유를 줄 때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작은 사회에서 자신의 책임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아무런 부담 없이 제시할 수 있게 하는 것, 가끔은 약간의 책임 하에 그런 아이디어를 실행시켜버릴 자유를 주는 것. 이런 것이 일본이 급변하는 국제사회 가운데서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할 최고의 방법은 아닐까.

2010.03.31 http://glovoicesjp.com 공모전 투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