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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종교개혁 -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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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종교개혁


1장 패러다임의 전환
때때로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며 먼저 되어야 할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패러다임이란 실제의 어떤 측면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사고 유형이나 사고 지도라는 의미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땅을 아래로 깊이 파 내려 가는 것과 유사하다면 패러다임의 전환은 그 구멍에서 나와서 새로운 지점에서 땅파기를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적합한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계시지는 않는가?

2장 두 날개를 가진 교회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대한 두 가지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속한 교회가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교회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과 소그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 날개를 가진 교회를 창조하셨다. 한 날개는 대그룹 예배를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소그룹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교회는 더 이상 이 두 번째 날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제부터 우리의 교회는 두 날개를 가진 교회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많은 교회가 소그룹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임이 신약성경의 공동체와 동일한 것인가? 여기서 몇 가지 테스트 방법을 제안해 보겠다.
1. 교회는 살아 있는 유기체인가? 아니면 조직체인가? 그 교회가 건물과 주일 낮 예배 없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
2. 소그룹(셀)이 그 자체로 교회라고 생각하는가? 바울은 가정의 소그룹을 교회라고 부르는 데 아무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다.
3. 교회는 그 원본이신 그리스도를 잘 복제하고(나타내고) 있는가?
4. 교회가 성장할수록 교회 조직은 복잡해지는가? 셀 교회는 단순하다.
5. 번식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번식이 셀 수준에서 발생하는가?
6. 새로운 개종자가 있는가?
7. 교회가 박해를 견딜 수 있는가?
에디오피아의 아메리카 메노나이트 교회는 이 테스트를 모드 통과한 교회이다. 이 교회는 강력한 핍박 속에서 셀 단위로 흩어져 1982년 5천명이었던 교인 수가 10년 만에 5만명으로 증가였다. 이런 예는 강한 핍박 하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자유주의 국가에도 많이 존재한다.
두 날개를 가진 교회에는 많은 특징들이 있다. 셀 교회는 주 7일간 기능하는 교회이며, 건물보다 사람을 중요시한다. 교회의 모든 훈련은 이 소그룹을 통해 일어나며 주일 예배는 주중에 구성원들의 삶에서 발생하는 생명력이 흘러넘친다. 소그룹 내에서 구성원들은 서로 가면을 벗고 서로 책임을 진다. 셀의 번식은 지속적으로 일어나며 셀교회는 사회에 극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이런 것들이 셀 교회의 특징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셀 교회는 그 활동에서 정의된다. 셀 교회를 직접 체험해 보라. 셀 교회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셀 교회를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3장. 지도자 패러다임
많은 지도자들이 꿈속에서 살고 있다. 신약시대 교회에 대한 이상과 우리의 교회에 대한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의 교회는 우리의 프로그램이 이끌어 가는 사업체인가? 아니면 주님이 이끄시는 교회인가? 지도자들은 지도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가?

4장. 소비자 패러다임
교회는 극장에 앉아있는 관객들과 같이 되어가고 있다. 사탄은 교회를 파멸시키지는 못하였으나 소그룹 구조를 파괴함으로 교회의 많은 능력들이 무력화되었다. 한쪽 날개뿐인 교회는 소비자를 대량 양산할 뿐이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이 체제의 희생자인 것이다.

5장. 종말론적 패러다임
이 시대는 많은 죄악과 그로 인한 비극들, 그리고 질병과 기근과 인구 폭발의 시대이다. 도시는 커지고, 사람들은 대중 속에서 오히려 소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교회는 고립되어 간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들을 위한 유일한 희망은 교회,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이다.

6장. 질문들
전통 교회는 전적으로 잘못되었는가? ->No
셀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No
그러면 전통 교회안에 있는 교인의 삶이 모두 문제가 있는가? -> No
이런 셀 교회를 세우는 것은 쉬운가? -> No
왜 그룹의 크기가 문제인가? -> 의사소통라인이 복잡해질수록 깊이있는 관계가 힘들어진다
왜 셀 교회만이 교회의 유일한 구조인가? 신약시대에 여러 교회의 구조가 있었으나, 두 날개의 설계는 변화되지 않았다.
셀그룹은 1세기뿐 아니라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Yes
셀교회는 전 세계에서 적용 가능할까? Yes.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그룹이 통용됨

7장. 두 날개를 가진 교회의 유익들
교회는 소그룹이 연주하는 멜로디와 대그룹이 연주하는 하모니로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
셀은 대그룹에 비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단위이다.
교회는 교회에서 모이는 1주일에 한번이 아니라 교회를 벗어난 곳에서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셀 그룹은 각자의 영역의 최전선에서 전투를 가능하게 하며 구성원 모두가 세상의 상처와 필요를 다루도록 한다.
셀 그룹으로 모일 때에 진정한 교회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많은 리더들이 세워지며 그들에게 인도해야 할 현장이 주어진다. 동시에 많은 이들이 영적 은사를 적절히 발휘할 수 있다.
건물 문제는 부가적인 것이 되며, 대그룹 예배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대예배를 통해 경험한 사람은 친밀감 있는 셀 모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도록 인도될 것이다.


8장 교회 구조는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다
두 날개를 가진 교회는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시며 동시에 가까이 계신 하나님으로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태초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욥과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엘리야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진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성전 속에 거하심으로 자신의 내재성을 인간에게 보여 주셨다. 이뿐 아니라 구약 시대 겹겹이 싸여져 감히 접근할 수 없었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더불어 찢어진 휘장으로 더욱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오셨다.

9장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내재성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오셨으며 따라서 성부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동시에 계시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승천하신 이후 하나님보좌의 오른편에 앉으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자신의 신성을 계시하셨다. 예수님께서 주로 계시하신 속성은 그의 내재성이다. 먼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또 요한복음 14장 20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리스도가 아버지 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함을 말씀하셨다. 동시에 마태복음 18장 2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공동체 가운데 거하심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다.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은 초대교회에서 분명히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초대교회가 달라졌다. 초대교회에서 나타난 여러 소그룹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소그룹 설계와 연관짓도록 만든다.

10장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신약성경의 공동체
초대교회의 구조는 주일에 대그룹으로 모이고 주중에 흩어져서 소그룹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이것이 공동체의 정통성이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이것은 그들이 가장 기본적인 단위 공동체의 지도자였음을 보여준다. 신약성경이 설명하는 예배는 가장 기본적인 예배의 상황으로 소그룹 환경을 제안한다. 즉 우리가 아무리 억지로 해 보려고 해도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대그룹 모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은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은사로 참여하는 예배를 묘사하고 있으며, 죄를 범한 형제에게 교회가 권면하도록 조언한다. 주의 만찬은 소그룹에서 그 원형을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성경적인 대그룹 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인 소그룹 모임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지금 우리에겐 이것이 필요한 것이다.

11장 루터, 스페너, 웨슬리의 신학
역사를 통해 볼 때 교회의 원래 설계는 뜻하지 않은 장소와 환경 속에서 표현되었다. 마틴 루터는 두 가지 대그룹 예배와 소그룹 예배를 구상하였다. 그러나 이 소그룹 예배는 실제로 구현되지는 못하였다. 1669년 필립 스패너는 대그룹 예배의 부족한 면을 깨닫고 ‘경건 모임’이라 불리는 소그룹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제도권의 교회로부터 박해를 받아 이 모임은 중도에 그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존 웨슬리의 감리교 연합 모임은 밴드와 속회로 나누어져서 이루어졌다. 속회 모임은 매주 한번씩 이루어졌으며 전체 건물의 주춧돌이었다. 이 모임에 대한 많은 비판이 있었으나 웨슬리는 이 소그룹 모임을 진정한 교회로 생각했고 다른 교회의 반대를 이겨낼 수 있었다.

12장 왜곡된 기독교
오늘날의 교회는 이신론과 범신론이 주는 파괴적인 영향을 경험하고 있다. 이신론은 하나님의 초월성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데에서 기인하며, 범신론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을 우주의 일부로, 혹은 모든 자연을 하나님으로 여긴다. 이 두 가지 극단 중 특별히 오늘날의 교회 내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시한채 사역이나 지식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교회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들에게 많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교회는 또한 그들을 즐겁게 하는 일에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의 실제적 삶에 있어서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주지 못하였다. 그 결과 대다수의 교회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는 것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하나님께서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자신을 나타내시도록 하는 일에 달려 있다.

13장 예수님의 기초적인 건축 단위
이 장에서 저자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통해 셀 그룹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장을 읽으며 셀 그룹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서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걸작품이 되어가고 있는가? 아마도 나의 대답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하면서 그리스도의 걸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정도 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고 계시지만 내가 내 삶 속에 역사하시는 그분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소그룹은 어떠한가? 우리 소그룹의 중심은 그리스도인가? 우리 청년부의 중심은 그리스도인가? 그분을 위한 사역과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부분에 이르면 머리가 좀 혼란스러워진다.

14장 예수님의 혁명적인 체제
이 장에서 저자는 체제가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적용점이 교회가 된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면 체제가 과연 해결책인가? 그렇다. 물론 현대의 많은 사례에서 보듯 체제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사용하여 만든 좋은 체제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맥도날드가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전 세계의 매장에서 비슷한 품질과 맛을 가진 햄버거를 만들어 내지만, 대부분의 점원들은 뛰어난 요리사도 훌륭한 매니저도 아니라 그저 시스템에 맞추어 돌아가는 단순한 일꾼이란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가 13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공동체의 중심되신 분은 그리스도이다.

15장 예수님의 진행과정
예수님이 많은 무리 중에서 70명에게, 또 12명의 제자들에게, 더 나아가 3명의 제자들에게 집중하신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인간’으로서 여러 사람에게 같은 집중도로 가르치며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셀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집중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집중할 것인가?
이와 별개로 이 장을 읽으며 의문이 든 것은 저자가 어떤 근거로 초대교회 120명 혹은 500명의 성도들이 셀 단위로 그룹화 되어 있었다고, 혹은 셀 단위로 움직였다고 추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16장 예수님의 원형
솔직히 이 장에서 좀 좌절했다. --;; 이 책을 읽으며 희미하게 가져왔던 의심을 저자가 대 놓고 안된다고 이야기하니... 처음부터 갑자기 셀 교회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원형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동삼교회 청년부에도 가능할 것인가?
뭐 주님이 도우시면 가능하겠지...^^;;

17장 예수님의 원형요소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회도 비슷한 형태를 띄어 오지 않았나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한 지역에 교회가 들어서고, 그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그 교회에서 누가 떨어져 나가 근처 다른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좋지 않은 이유로 교회가 갈라져 나간 경우가 많겠지만, 그것이 분열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손길은 아니었을까. 나는 셀 교회가 유일한 하나님의 전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좋은 성경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하고 그 방법에 동의한다. 그 세부적인 방법에 대해선 아마 마지막 부분을 읽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8장 ~ 결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핵심 그룹’ 이라고 생각된다. 셀교회로의 전환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없으며 그것은 핵심이 되는 소수의 그룹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그룹을 통해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들이 모여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셀 교회의 비젼을 주시고 셀 교회가 되게 하실 것이다.